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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네현립 고대 이즈모 역사박물관은 지진 대비 보강 공사 등을 위해 2025년 4월부터 2026년 9월(예정)까지 휴관합니다.
‘이즈모오야시로와 신들의 땅의 제사’ 전시는 박물관과 인접한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역사와 건축, 제사 등을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주제신(主祭神, 신사의 중심이 되는 신)인 오쿠니누시는 농업과 건국, 인연 맺기(사람 사이의 유대)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인연 맺기란 부부나 이웃, 동료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농가의 풍작 등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좋은 결과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1)이즈모오야시로 신사: 창건
(2)이즈모오야시로 신사: 본전의 변화
(3)가미아리즈키(神在月): 신들이 있는 달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창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구니유즈리 신화(천상의 신이 이즈모의 신들에게서 나라를 물려받았다는 신화)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즈모노쿠니 후도키(出雲国風土記, 8세기에 지역의 전승 등을 기록한 서적)에는 신사의 창건 신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8세기에 쓰인 이러한 자료들은 이즈모오야시로 신사를 오래전부터 중요시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즈모오야시로 신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되었는데, 본전은 일본의 고대 주거 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다이샤즈쿠리 양식을 중심으로 건축되었습니다. 맞배지붕 형식의 다이샤즈쿠리 양식은 박공벽(삼각형의 벽면)에 계단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를 쓰마이리라고 부릅니다. 또한, 다이샤즈쿠리 양식은 기둥을 세워 바닥을 높게 올린 것(고상식)이 특징입니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기원 1세기경 토기는 이러한 고상식 건축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인근 돗토리현에서 출토된 토기에는 기둥을 세운 긴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밖에도 야요이 시대(기원전 800년~서기 300년)부터 이즈모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예로 야요이 시대에 만들어진 소용돌이 문양의 구슬(곡옥)과 청동으로 만든 미늘창(청동 미늘창)이 신사 주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곡옥은 지금의 호쿠리쿠 지방에서, 청동 미늘창은 규슈 북부 지방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두 출토품 모두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점에서 고대 이즈모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제사에서 동탁과 동검을 매장한 흔적들이 인근 유적에서 발견된 것도 이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고대의 본전은 높이가 48m에 이르는 웅장한 건축물이었다고 전해집니다. 10세기, 귀족 자제들을 위한 교과서 『구치즈사미』에는 이즈모오야시로 신사가 나라 지역의 도다이지 절 대불전 및 교토의 조정 행정기관 건물과 함께 당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중앙에 설치된 1/10 크기의 대형 모형은 10세기 당시의 이즈모오야시로 신사를 재현한 것입니다.
이즈모오야시로 신사는 창건 이래 수차례에 걸쳐 재건축되었습니다. 센구(신령을 옮기는 의식)의 전통(‘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정기적인 재건’)은 신사의 경내와 구조, 특히 본전의 외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즈모오야시로와 신들의 땅의 제사’ 전시에서는 각 시대별로 추정되는 본전의 모습이 다수 전시되어 있습니다.
초기의 본전은 상당히 대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지지만 2000년에 고고학적인 발견이 있기까지 물리적인 증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외적으로 『가나와노고조에이사시즈』(본전의 평면도)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작성된 이 그림에서는 본전의 9개 기둥이 3×3 형태로 배치된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경이 3m에 이르는 기둥은 통목 3개를 금속줄로 묶어 제작되었습니다. 건물의 높이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입구 계단의 길이가 약 109m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상당한 규모의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00년에 본전 주변에서 여러 기둥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과거에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이 존재했다는 설에 신빙성이 더해졌습니다. 기둥의 크기와 배치가 『가나와노고조에이사시즈』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과 유사하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248년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3세기 본전의 정확한 모습을 밝혀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시되어 있는 1/50 크기의 5가지 모형은 각 건축가들이 본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모형들은 불교 건축의 영향을 받아 붉게 도색된 본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즈모오야시로 신사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인근 천태종 사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1609년의 디오라마에서는 붉게 도색된 본전과 신전, 경내에 지어진 삼층탑(전통적인 불교 건축) 등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1667년에 이즈모오야시로 신사를 대규모로 재건할 때는 불교적인 영향이 줄어들었습니다. 1667년에 신전의 대규모 개조에 나서면서 본전과 주변 건축물에는 도색칠을 하지 않았고, 불교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루는 파괴되었습니다. 종루에 있던 종과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웅장한 삼층탑은 다른 종교 시설에 기증되었습니다. 이렇듯 신사의 모습이 크게 변화한 1667년 당시의 모습은 디오라마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44년에 건립된 지금의 본전은 1667년 당시의 본전과 거의 동일한 모습입니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수차례 재건된 본전은 1744년 이후, 특히 1952년에 지금의 건물이 국보로 지정된 후로는 재건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대신 약 60년마다 대규모 유지 및 보수 공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13년에 노송나무 껍질 지붕을 새롭게 교체했습니다. 전시실 안쪽 벽에는 1881년부터 1953년까지 지붕을 장식했던 두 갈래로 엇갈린 모양의 거대한 지붕 머리 장식과 동 조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음력 10월이면 일본 전국에서 수많은 신들이 이즈모로 모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들은 일주일간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의 주제신(主祭神, 신사의 중심이 되는 신)인 오쿠니누시와 함께 다음 해의 풍작 여부와 사람들 간의 관계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시기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신이 없는 달(神無月, 가미나즈키)이라고 부르는 반면, 이즈모에서는 신이 있는 달(神在月, 가미아리즈키)이라고 부릅니다.
이즈모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신들의 모임은 8세기 초에 기록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여러 서적에 수록된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서적들 또한 더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니유즈리 신화에서는 오쿠니누시가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의 후손에게 땅을 물려주는 대신 훌륭한 신전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란, 신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 관한 세계도 포함합니다. 이렇게 오쿠니누시는 ‘인연 맺기’의 신이 되었습니다.
가미아리즈키 기간에 이즈모를 찾은 신들은 본전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말사(末社, 본사에 부속된 신사)에 머무릅니다. 신들은 이즈모오야시로 신사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져 있는 이나사 해변 근처의 작은 신사에 매일 모여 다음 해의 인간 관계에 관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즈모오야시로와 신들의 땅의 제사 전시실(중앙 로비에서 왼쪽)에는 신들의 북적이는 모임을 묘사한 목판화 우키요에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키요에는 19세기에 제작되었으며, 그림 중앙에 오쿠니누시가 앉아 있습니다. 다른 여러 신들이 나무패에 사람들의 이름을 쓰고, 그것을 끈으로 묶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들이 짝을 지은 나무패를 오쿠니누시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구하면, 오쿠니누시가 짝지어진 두 사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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